260320(한겨레) 최소 1년 전부터 위기신호... '울산 일가족 참변' 못 막은 국가

전북희망나눔재단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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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1년 전부터 위기신호…‘울산 일가족 참변’ 못 막은 국가

다가구주택 아버지·자녀 4명 사망, 전북에서도 ‘가족 비극’ 잇따라

주성미기자

수정 2026-03-20 07:15등록 2026-03-19 19:40


울산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일가족 5명이 숨졌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아빠가 ‘홀로 아이 넷을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벌인 일이었다. 학교·행정복지센터·경찰에서 거듭 위기 신호가 감지됐지만 비극을 막지 못했다. 당사자가 신청해야 지원에 나서는 ‘신청주의’의 틀을 넘어 통합적이고 적극적인 위기 가정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한겨레가 찾은 울산 울주군 온산읍의 한 다가구주택에는 ‘경찰 수사 중’이라고 쓴 노란 띠 옆으로 등기우편물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수신자는 전날 오후 5시께 자녀 4명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아빠 ㄱ(33)씨였다. 아이들은 7살 첫째부터 잇따라 두살 터울로, 막내는 생후 5개월이었다.

 

ㄱ씨는 직업 없이 홀로 아이들을 돌본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들을 홀로 키우기 힘들다.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16일 오후 4시께 ㄱ씨를 봤다는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같은 날 밤 9시께 비극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위험 신호는 적어도 1년 전부터 나타났다. 행정복지센터는 지난해 초 건강보험료를 못 내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에 포함된 ㄱ씨 가족을 확인했다. 우편함에 두고 온 안내문을 아이들 엄마(34)가 챙겨 행정복지센터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지난해 3~5월 다달이 긴급생계 218만원, 주거 50만원 지원이 이뤄졌다. 이후에도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이 지원됐다.

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 편의점 업주는 “반년 전부터 만삭의 엄마가 라면 등 먹거리를 외상으로 산 뒤 갚는 일이 반복됐다”고 기억했다. 지난해 말, 그나마 생계를 책임졌던 엄마가 사정이 생겨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가족을 돌보지 못하자 상황은 더 악화됐다. 올해 1월20일 또다시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 명단에 포함된 이 가족의 건강보험료 미납액은 100만원이 넘었다.

이에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은 지난달 20일 ㄱ씨를 만나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안내했다. ㄱ씨는 머뭇거리면서 “나중에 가겠다”고만 했다고 한다.

 

비상음은 열흘 뒤 학교에서 터져나왔다. 초등학교 새내기인 큰딸 ㄴ양이 첫 등교일인 이달 3일부터 6일까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동 학대·방임 의심 신고를 받은 경찰과 울주군 아동보호팀 공무원이 출동했지만 교육적 방임 외에 학대 정황은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 등은 자녀들이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혀 강제 분리 등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ㄴ양은 9~13일에는 정상적으로 학교에 왔다. ㄱ씨는 9일 편의점에서 13만원어치 식료품을 외상으로 샀다고 한다. 하지만 ㄴ양은 16일부터 다시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담임 교사는 18일 다시 경찰에 신고했지만 ㄴ양은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주검으로 발견됐다.

 

최근 비슷한 사건이 잇따른 점도 위기 가정 대응 강화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지난 10일 전북 임실군에서는 90대 노모와 아들, 손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은 노모를 돌보려고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으나 장기간 돌봄에 지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17일에는 전북 군산시 아파트에서 7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이 숨져 있는 것을 집주인이 발견했다. 이들은 월세와 전기·수도 요금이 밀린 상태에서 지난달부터 주변과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당사자의 신청을 중심으로 하는 현행 복지 체계는 실제 위기 상황을 포착하고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은 “위기 상황에서는 보다 신속하고 밀착된 초기 개입이 필요하다”며 “복지는 더는 신청을 기다리는 제도가 아니라, 먼저 찾아가 연결하는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영 순천향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한 상태에서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면 기초생활수급 신청 같은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발굴한 위기 가정을 위해 경제적 지원과 정신 건강 지원을 적극 할 수 있는 통합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